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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석기 시대 토기(吐器)는 인류가 신석기 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발전했다. 또한 토기는 인류가 정착생활과 불을 사용하면서부터 만들어진 문명의 산물이며 도자기 소성(燒成)기술은 인류가 최초로 화학적 변화의 응용을 생활에 적용시킨 최초의 예라 할 수 있다. 중국은 매우 오래전부터 각지역에서 다양한 도자기를 생산했다. 이제까지 발견 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은 B.C 7,000~8,000년 전의 것으로 황하(黃河) 유역의 협서성(陜西省) 남부, 하남성(河南省) 배이강(裴李岡) 유적지 하남성(河南省) 자산(磁山) 유적지 등에서 신석기 시대의 토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특히 B.C 5,000~7,000년 전의 앙소문화(仰韶文化)의 채도(彩陶)는 황하유역의 원시미술을 대표하는 중요한 아이템이다. 앙소 채도(仰韶彩陶)의 제작기법은 먼저 토기의 기면을 연마한 후 철분을 다량 포함하고 있는 적토(赤土)로 문양을 그린 후 1000℃내외에서 소성한다. 이렇게 소성하면 기면에 적토로 그린 문양이 착색하고 잘 떨어지지 않다. 적토는 보통 반건조 시에 채색하며 산화철이 너무 많이 함유된 것은 소성 시 검은색을 띠며 기면에 착색한 채색이 떨어져 나간 것도 발견된다.
2. 은주시대(殷周時代, B.C 1,400~B.C 770)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에 중국에 국가형태가 성립되었다. 이 때 청동기문화가 발전하면서 토기는 점차 쇠퇴하며 원시도기가 등장하게 된다. 원시도기는 3% 이하의 철분이 포함된 태토(胎土)로 성형하여 그 위에 인위적으로 지금의 유약과 비슷한 성분의 유약을 제조하여 이를 시유(施釉)한다. 1,200℃ 내외의 고온에서 소성된 회유도기(灰釉陶器)이다. 하남성(河南省), 호북성(湖北省), 강남성(江南省) 등의 유적지에서 은대(殷代) 중기(中期)의 도기가 발견되었으며 절강성(折江省), 강소성(江蘇省), 산동성(山東省), 하남성(河南省), 하북성(河北省) 등의 유적지에서는 은대(殷代) 후기부터 서주시대(西周時代, B.C 1,000~B.C 770)의 원시도기가 발견되었다. 원시도기의 유약은 산화철을 안료로 하여 고온에서 소성한 유약으로 산화 소성으로 소성되기 때문에 황색(黃色)의 기운이 도는 청색(靑色) 혹은 황갈색으로 발색(發色)한 경우가 많다. 이것은 초기청자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기시대(B.C 476~B.C 221)가 되면 시유 기술이 높아져 유약의 두께는 얇아지거나 균일하게 된다. 더욱이 양질의 유약재료를 선택하게 되고 소성기술도 발달하게 된다.
3. 한시대(漢時代, B.C 207~A.D 220) 후한시대(後漢時代 A.D 25)는 자의 제작기술이 점차 높은 기술을 갖추게 됨에 따라 청자다운 청자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대다. 절강성(折江省)의 요지에서 발견된 파편을 분석해 보면 소성온도가 1,270℃~1,310℃에 이르는데 흡수율은 낮고 강도(강도)는 높아 현재 자기에 가까운 품질의 자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가마의 형식을 개량하여 용요(龍堯), 등요(登窯)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짐작된다. 한대의 도자기 중에서 중요한 아이템은 납유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납유는 납을 위주로 한 저화도 유약이다. 납유 중에 미량의 산화동을 첨가하여 산화소성하면 동(銅)은 녹색으로 발색하는 데 동 대신 산화철을 첨가하여 소성하면 갈색 또는 적갈색으로 발색한다. 이러한 납을 첨가한 채유의 기술을 기반으로 당삼채(唐三彩)가 발생한 것이다.
4. 삼국 ·남북조시대(三國時代·南北朝時代, A.D 220~A.D 581) 이 시대의 청자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특히 절강성((折江省) 지역의 청자가 유독 질이 좋았다. 태토는 매우 고운 것을 사용하였으며 유약은 광택이 있고 적회색으로 발색된 것이 많다. 기물의 형태는 매우 다양한 편이며 장식 또한 인화문(印花紋), 각화(刻花紋) 등 다양한 문양이 발견된다. 동진(東晋 A.D 317~420)시대 이후 청자의 제작지역은 확대되었는데 절강성((折江省), 강소성(江蘇省) 뿐 아니라 호북성(湖北省), 산서성(山西省), 강서성(江西省), 사천성(四川省) 및 북방지역의 산동성(山東省)에까지 청자가 제작되었다. 남북조(南北朝時代, 420~581)가 되면서 불교 예술의 영향을 받은 각화문(刻花紋), 연화문(蓮花紋) 등이 등장하나 이 시기의 장식 기법과 문양은 서진(西晋)시대의 것과 비교해 보면 간략하게 생략된 것이 많았다. 이러한 생략된 문양이 생겨난 배경으로는 청자 제작이 증대되고 상품화, 대량화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수요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귀족 계급은 금, 은, 유리, 칠기(漆器) 등을 사용하였으며 하급민 등은 청자로 된 기물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청자 수요층의 저하가 청자의 질을 갈수록 저하시켰으며 이러한 상황은 당(唐)시대 초기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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